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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새로운 시대를 위해

우리 시대의 노래2024년, 오늘의 민중가요, 다만세-

우리 시대의 노래

2024, 오늘의 민중가요, 다만세-

 

0. 네트의 세계는 거대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감에 즈음하여 써보는 글이다.
8살 비오는 거리에서 수많은 '나'를 발견하고 세계는 수많은 일인칭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경이로운 경험이 본인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다는 소감에 전율이 돋았다. 


커뮤니티는 하나가 되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개개인이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많은 1인칭이 숨쉬고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이다.

 

1. 다시 만난 세계

지금 국회 앞에서 모인 수백만의 사람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각자 팬클럽의 응원봉에다 탄핵을 새기고 외치고 있다. 작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성난 국민들이 외치는 소리가 바로 시대 정신(장성호·이정미, 2023)’이라고 규정지을 때, 2024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다시 만난 세계가사 바로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제 안녕.. ‘

 

단순히 사랑노래라고 치부하기엔 노래 가사가 지금의 내란정국의 전후한 한국의 현실과 너무나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가 혼란의 정국을 해매고있으며 이제는 반복되는 슬픔을 끝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염원이라고 본다면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2030세대들이 집회의 주축이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K-POP이 흘러나온걸까? 갈등과 반목의 정치, 더욱 커지는 불평등한 경제, 계층간의 대립이 심화되는 사회의 문제를 바꾸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계엄과 내란을 시발점으로 국회 앞으로 다시금 터져나왔다고 본다.

 

2. 해뜰날과 경제성장

일찍이 시대정신은 지도자들의 슬로건으로 대표되어 왔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난 대한민국의 1(이승만)부터 12대 대통령(전두환) 선거의 슬로건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은 경제성장이었고 대한민국을 이끌 영도자, 지도자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 대통령 후보들은 노력했다.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 후보는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했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박정희와 맞섰던 윤보선 후보(군정으로 병든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나 김대중 후보(10년세도 썩은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의 슬로건도 모두 열심히 일하겠다던 집권당 후보의 슬로건에 결국은 묻혔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인 경제성장을 대표한 노래라면(여러 노래가 있겠지만) 필자는 해뜰날을 꼽는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은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60년대 70년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국민들의 염원과 정치권의 전략, 그리고 70년대 후반부 오일쇼크에 지쳐있던 시대의 분위기로 인해 대중들의 호응이 엄청났었다.

 

3. 민주와 아침이슬

87년 민주항쟁이후 부활한 직선제를 통해 13(노태우)부터 16(노무현) 대통령선거의 슬로건은 명실상부한 정치의 민주화라고 하겠다. 군사정부를 종식시키고 보통사람(노태우가 군인 출신이지만)을 내세우고, 문민정부(김영삼)와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를 내세운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90년대 이후 서태지의 출현 이후 개인의 취향이라는 큰 화두에 밀려, 시대정신을 담았다라고 볼 수 있는 노래들은 차후에 논의하겠다. 민주화를 노래하던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은 노래라면 아침이슬이라고 하겠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많은 민주화 집회에서 불리워졌고, 민주화를 염원했던 대학생과 시민들에게 널리 회자된 노래였다.

 

4. 청산별곡과 광야

고려말 부패한 권문세족들의 가렴주구와 몽골의 침략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애환과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던 대표적인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다. 청산이라는 새로운 낙원에서 먹고 자는 걱정없이 살고 싶은 소망이 엿보이는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문학예술(김쾌덕, 1987)작품이라 하겠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靑山애 살러리랏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일제강점기 신음하던 식민지 민중들의 절망과 새로운 지도자와 새 조국에 대한 기다림, 열망, 인고를 담은 시가 바로 광야(이육사 시)(박민영, 2016)이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지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무엇인가? 요즘 말로 소시의 다만세가 다했다라고 하겠다.

백마를 타고 올 초인을 기다리며 긴 밤 지새운 아침이슬처럼, 청산에 살고 싶고, 쨍하고 해뜰날에 찾아올 것 같은, 반복되는 슬픔이 없는 다시 만난 세계를 원하는 국민, 대중, 민중들의 염원이 바로 시대 정신이다.

 

5. 2024년의 민중가요

청산별곡과 광야, 해뜰날이 민중가요인지, 대중가요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대중가요들이 가진 제도권 매체의 힘을 의존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었다고 평가받았던 민중가요(김병순, 2013)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흔히들 널리 대중이 즐겨 부르며 대중성, 오락성, 통속성, 상업성을 띠는 대중가요와 다르게, 민중의 삶을 바탕으로 함께 즐겨 부를 수 있게, 비판적인 사회성과 민중성을 가진 민중가요는 그 정체성에 걸맞는, 작금 대한민국의 민중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한때 대학생 시절인 90년대 후반과 2000년 초반,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민중가요들을 지금도 흥얼거리고 있다.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장'과 조국과 청춘의 '청년시대' 등은 나를 그 시절, 그 거리, 그 무대 위로 소환하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는 사계‘, ’솔아 푸르른 솔아등의 의 원곡자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과 아침이슬의 김민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넘나드는 안치환‘, 그리고 아직도 왕성히 활동을 하고 계시는 정태춘등 선배 민중가수들의 업적을 존경하며 의의를 높게 평가한다.

.지금도 음으로 양으로 환경과 통일문제, 소수자문제, 인권 문제 등에 소리를 내고 있는 수많은 민중가요 종사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주의 계급투쟁 관점에서 문학예술의 이론(정남영, 1992)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가요 중에서 가장 사회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민중가요가 대중성을 잃어버린 채 일종의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만 이해되고 소비된다면, 그들이 비판했던 제도권 음악의 경직성과 배타성과 다를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대중)들을 위한 노래를 하라고 상업성을 주문하거나 경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민중성을 다시금 획득할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자신들이 서 있는 이 터전의 잘못된 사회문제, 경제문제, 정치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일반 대중의 강력한 시대의식을 반영할 것인가를 묻고자 함이다.

80년대 대중가요의 새로운 흐름이었던 뉴잭스윙을 자신들의 발랄함과 청량함으로 재해석한 뉴진스는 최근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를 신선하게 흔들었다. ’소시의 다만세는 이제 더 이상 흔한 대중가요가 아니라 민중성을 획득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노래가 되었다.

특정한 형식의, 특정한 주제의식의 노래만이 민중가요의 전부가 아니다.
오늘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자.
2024
년에는 2024년의 민중가요가 필요하다, 아니 있다고 본다.

미주 
1) 시대정신 : 국가와 사회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가장 절박한 문제의식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는 관심사이며 각 시대가 처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출처 : 장성호, 이정미. (2023). 한국 정치지도자의 시대정신 구현연구 -대선 슬로건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3(10), 88-103. 10.5392/JKCA.2023.23.10.088)

2) 출처 : 김쾌덕, 「고려속가의 사회배경적 연구」,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7, 113면

3) 출처 : 박민영. (2016). 절망에 저항하는 이육사의 시 - 시 「絶頂」 「曠野」 「꽃」을 중심으로 -. 한국문예비평연구, 49, 29-50.

4) 민중가요의 정체성과 의의에 대해 발췌하여 정리함
(출처 : 김병순. "한국 민중가요의 전개와 대중성." 국내석사학위논문 부산대학교, 2013. 부산)

​5) 마르크스 엥겔스 문예이론 : 우리가 요구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 예술의 특수성만을 강조하고 역사의 구체적인 과제를 등한시하는 편향, 혹은 그 반대로 실천적 과제를 강조하되 예술의 특수성은 보지 못하는 편향을 모두 경계하고자 한다.,
(출처 : 정남영. (1992, 9).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예이론. 이론,, 61-78.)